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삼성전자 S470 시리즈 SSD, MZ-5PA064 (64GB)

삼성에서 새로 나온 SSD 를 샀다. 일명 470 시리즈.

 

원래 인텔 X25-V 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용량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고, 신제품을 써보고 싶은 욕구도 있고 해서 이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크루셜 컨트롤러를 쓴 제품과 샌드포스 컨트롤러를 사용한 제품들도 눈에 들어왔으나

 

크루셜 제품은 sata-3 가 아니면 제 성능을 못낸다는 것과 쓰기 속도의 압박이,

샌드포스 제품은 실성능이 벤치 성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용기들이 마음에 걸려 선택하지 않았다.

 

삼성 s470 이 제품은 실성능이 잘 나온다는 평가도 있었고, 가격도 위 제품들에 비해 저렴했던 것이 메리트였다. 역수 제품이라는게 걸렸지만, 뭐 수리할 일 있겠냐는 생각이다.

 

 

사진은 사진기가 없어서 생략하고,

 

패키지는 단출하나 깔끔했다. SSD 본체의 디자인은 예뻤다. 꽂자 마자 잘 작동했다.

 

간단한 벤치 자료 올려본다.

 

 

 

좌측이 S470, 우측이 기존에 쓰던 x25-v 이다.

 

x25-v는 처음에 윈도우 등 기본 어플을 막 설치했던 상태이고,

s470은 그 후로 열심히 사용하던 x25-v의 내용물을 그대로 옮겨담은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뭐 x25-v 의 쓰기속도야 원래 떨어지니까 할말 없고, 4kb 읽기 쓰기는 미세하게 S470이 떨어진다.

그리고 윈도우 평점에서도 x25-v 가 더 높게 나왔다.

 

(원래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x25-v 를 노트북에서 떼어내기 전에 test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음.......)

 

 

실 사용에서는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s470을 장착한 후로 무언가 설치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쓰기속도의 차이를 체감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뭐 일반적인 사용에서의 느낌은 그대로이다.

 

아무튼 둘 다 훌륭한 제품인 듯 하다. 가격이 떨어질만큼 떨어진 x25-v 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뜨끈뜨끈한 s470도 제법 괜찮은 성능을 낸다.

 

 

 

뭐 결론은, 노트북에 SSD는 필수라는!

 

 

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기독피디아

http://dvdprime.cultureland.co.kr/bbs/list.asp?major=ME&minor=E1&master_id=40&fword_sel=&SortMethod=0&SearchCondition=1&SearchConditionTxt=%B1%E2%B5%B6%C7%C7%B5%F0%BE%C6

 

 

위 링크에서 퍼 온 기독피디아

 

어릴 때 친구 손 잡고 교회도 나가보고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나온 필자 입장에서는

100프로는 아니어도 전반적으로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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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 기독교의 핵심. 우주를 만들었고 세상만사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GOD. 사막에서 수메르신화 등 주변 중동신화들을 짜깁기 해서 탄생했으나 로마제국 등을 거치면서 통치이념상 필요해서 키워 준 인기종교의 끝판왕.  주로 '아버지'라고 불리움. 우리 아빠에게도 아버지고 나에게도 아버지. 고로 기독교인들은 자기 아빠에게 "형"이라고 불러도 무방함


예수: 야훼에게는 아들도 되었다가 자기 자신도 되었다가 하는 희한한 족보의 산증인. 뒤에 메시야 편을 참조할 것.

 

기독교인: 사막잡신 팬덤. 팬덤내에서도 내분이 곧잘 일어나 여러갈래 종파로 나뉘었으나 개신교가 가장 적극적이고 또 지랄임.

 

한국교회: 막장드라마의 최고봉. 그 막장 지수가 중간권, 성층권을 지나 요새는 주로 정치권에서 놀음.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십 몇 광주리나 남았다는 이야기. 아빠는 아무것도 없는데서 천지만물을 창조했는데 얘는 누가 떡 갖다 줘야 복사신공으로 이런 거라도 함. 그래놓고 예수=야훼라고 하는 이들이 많음.

믿음: 증거가 없이도, 아니면 반대되는 증거가 있어도 불구하고 무조건 그렇다, 그래야만 한다는 강한 자기 암시.


성경: 수많은 작자가 여기저기서 빌려온 이야기로 붙이고 짜르고 짜깁기한 걸레대본. 구약은 이스라엘의 구라역사. 신약은 예수의 구라역사. 초대형 베스트셀러이나 끝판 까지 읽은 이는 매우 드문,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류의 책


십계명:  도레미파솔라기도 등으로 이루어진 계명. 기독교인들이 지켜야할 10가지 규범. 1. 교회 열심히 다니고, 2. 다른 사람거 뺏지 말라는 거가 핵심임. 그런데 2항을 지키는 인간이 없어서 문제.


주기도문: 머리가 나쁘고 문장력 딸려서 자체로 창의적 기도 못하는 기독교인을 위한 상시 매뉴얼

목사: 일명 먹사. 요새는 단기 6개월코스로도 딸 수 있는 평생직업자격증. 여신도와 떡치다가 공중에서 죽나 안죽나 신을 시험하려고 뛰어내려보다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죽는 목사도 있음. 


불지옥설: 기독교에서 멍청한 일반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 강도의 협박.


헌금: 하나님에게 바치는데 주로 목사들이 살 찌고 외제차 사고 해외여행가는데 쓰이는 희한한 삥. 아래 감사헌금, 기도헌금 참조.


대형교회-개척교회-해외선교회의 관계 ----------- 본진-앞마당 멀티-섬맵 멀티


창조과학: 눈부신 어둠, 소리없는 아우성과 같은 자체 모순단어. 진화론이 내미는 과학적 증거에 너무 까이니까 성경도 과학적이다라며 기독교인이 내세운 논리. 제정신을 가지고 읽다보면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


전지전능: 대표적인 자체모순. 신이 미래를 내다보는 걸 지가 맘대로 바꾸고 또 그것을 전지가 알고 있었다면 전지가 망가진거냐 전능이 망가진거냐라는 간단한 국어도 못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신의 속성

 

창세기전: 신이 6일 동안 우주를 만들고 하루 쉬었다는 이야기. 전지전능한 신이 1초면 만들 걸 그걸 6일씩이나 만들고 힘빠져서 쉬고 있는 이유는 아무도 모름


천국: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죽으면 간다고 믿는 곳. 주소도 모르고 갔다온 사람도 없지만. 그냥 믿는 곳. 김밥이 죽으면 가는 곳이 김밥천국이라는 설이 더 타당성 있음.


교회: 팬덤의 집합소. 오빠나 여자친구 만들러 가는 곳. 1년에 한번씩 계란 한알 주는 곳. 하지만 곧 계란의 수천배를 빼앗아 가는 곳


성령: 성스러운 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일인인지 3명이 각개전투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면서 대충 있어 보이라고 쓰는 단어.


방언: 기독교인이 기도할 때 대충 있어보이려고 입을 오무리고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것. 신경정신과의사에게 문의해 봐도  언어장애 증상과 구별하기 매우 힘듬

 

아브라함:(아브라함 링컨과 전혀 상관없음) 믿음의조상. 나이 100살에 90세의 아내에게서 아이를 얻은 절륜의 조상. 그렇게 힘들게 얻은 아이(이삭)를 환청을 듣고 산에 끌고 올라가 몸을 묶고 멱을 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뽑고 불에 태워 소시지를 만들려 함. 정신분열자의 조상이라는 설도 있음


요한계시록: 아브라함과 반대로 정신분열의 막차 타신 분의 꿈 메모.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그 당시에 천연 히로뽕이 있었다는 증거.


신명기: 샤이닝이나 캐리보다도 더 재미있는 호러물. 고어물(피떡칠)과 토치물(고문류) 좋아하는 분에게는 말 그대로 신명나는 '바이블'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명의 제자가 예수의 생애를 공통적으로 바라보고 썼다는 비효율과 중복 만땅의 신약성경. 똑같이 보고 썼는데 서로 다르게 기록한 내용이 많아 한명이 쓰고 나머지 세명이  Ctrl-C, Ctrl-V 했다가 가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음

 

메시야: FC바르셀로나의 메시를 친하게 부르는 호칭이 아님. 예수. 기름부음 받은자라는 헬라어.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 2000년쯤 전에 중동지방에서 여러가지 마술을 부리고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다가 정치인과 종파지도자들의 미움을 사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 아버지인 야훼와 더불어 자기기만, 자기모순의 끝판왕. 언젠가 지구로 다시 올 것이라는 환상속의 그대.

 


일부: 기독교인들이 자기 편의 잘못에 사회적 비난이 따르면 애써 말자르기, 꼬리자르기를 시도할 때 쓰는 말. 예) 일부 목사가 간통한 거임.  일부 기독교인의 실수임.  그런데 이 '일부' 만하더라도 벌써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커져 버린 상태. 요새는 '일부' 비신자에 의해 기독교를 비꼬는 말로도 '일부' 쓰임.


이단: 자기편 아닌 모든 사람.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다른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하는 젋은이도 있음.


마리아: 지구 최초의 대리모. 처녀수태했다고 주장하는 여인. 진위가 상당히 의심스러우나 사람 하나 잘 낳아서 죽어서 가죽이 아니고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여성.
      
> 덧붙임. 최초는 아니었음.

 

전도: 목회자에게는 사세확장의 방편. 신자에게는 충성심 과시의 방편. 전도왕이라는 로컬 타이틀을 내걸고 경쟁을 유도하는 교회가 수두룩함.


십자가: 예수가 고문당하다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살인기구. 사람들이 목걸이로 만들어서 지니고 다님. 예수가 200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전기의자 목걸이 대유행할뻔 했음. 밤하늘을 내려다 보면 씨뻘건 모텔 마크 만큼이나 많음.

 

은혜:신의 선물. 주로 교회 열심히 다니고 헌금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면 내려준다고 함.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게 다 은혜'임. 돈을 벌어도 은혜, 대학에 붙어도 은혜, 사람이 죽어도 은혜, 장애자가 되어도 은혜.

 

헌금: 매출. 목회자들이 신도들의 과한 재산을 덜어주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이른바 일석이조, 일거양득, 일타쌍피, 원스톤 투버즈, 마당쓸고 돈줍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님도보고 뽕도따고, 마누라죽고 보험금타는 ... 좋은 용도로 내라고 강요하는 돈.


십일조: 다른 성경구절은 다 은유, 우화, 해석실수라고 우겨도 절대 지켜야할 황금비율의 삥(1:10). 성경말씀이라고 칼같이 지켜야 한다는데 바로 몇장뒤에 나오는 '돼지고기 먹지 말라' 따위의 구절은 모두가 "그런걸 어떻게 지켜"하면서 애써 무시함


감사헌금: 감사할 때마다 내는 특별헌금. 주로 10만원 정도이나, 큰 교회에서 방귀깨나 뀌는 기독교인은 수억대도 척척 냄. 그걸 보고 목사들이 눈이 휘둥그레 져서 즐겨 인용하는 말이 '범사에 감사하라'


기도헌금: 며칠동안 기한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기도가 완료되었을 때 내는 헌금. 주로 10만원이나 큰 교회에서 방귀깨나 뀌는 기독교인들은 수억대도 척척 냄. 그걸 보고 목사들이 눈이 휘둥그레 져서 즐겨 인용하는 말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죄 :혈연적 관계도 없는, 있다고해도 수십대 전이라 이미 기억할 수도 없는 선조의 죄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연좌제로 묶인 것. '사랑의 하나'라는 신이 인간의 법에서도 금지된 연좌제로 사람들을 묶어 겁을 주는 것!

      >덧붙임: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장성해서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죽게 했고 그 원죄가 나에게까지 이른다는 논리. 신라시대때 내 50대조 어른이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장성해서 쓰러져 조선시대사람이 죽으면 21세기에 사는 나를 살인죄로 처벌하겠다는 내용임. 황당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 

 

영생: 영원히 사는 것. 기독교인이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서 100년이고 200년이고 5조억년이고 지속해서 누리는 행위.  삶이 짧고 유한하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함. 진시황이 이거 해보려고 애 쓰다가 나라 망했음. 우울증환자가 영생을 얻으면 정말 이게 천국인지 지옥인지 말하기 어려움. 지겨워서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함. 매일매일 에브리데이가 행복하다고 주장하나 어떻게 해서 행복한지는 아무도 모름. 가령, 컴퓨터게임을 만들며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는 4800000조 비트 컴퓨터가 마련되어 있다는 등의 내용은 없고. 영원토록 행복하게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함. 기독교인은 박명수임. 유재석님 옆에 있으면 그냥 행복해지는. 

 

순종: 가까이에 있는 혈육, 친구, 사회, 국가 등에 대해서는 가진 수단을 다 동원해서 자기자신이 왕노릇하려고 하는 반면, 실체에 대한 손톱만큼의 증거도 없는, 변태적인 교리를 가진 그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신이 '종'이라며 영원토록 발바닥을 좀 핥게 해달라는 심각한 노예근성의 발현. 신이 없으면 목사의 발이라도 핥는 대체행위도 종종 목격됨. 매저키즘의 일종.

 

모태신앙: 자기의 노예노릇을 자기 자식에게까지 유전시키겠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사회적 발현이자 명백한 아동학대. 새디즘의 일종.

 

순교: 신을 위해서 죽는 것. 종교적 신념에 따라 목숨을 바치는 것. 왜 종교의 궁극이 해악의 집대성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 이슬람교, 기독교를 가리지 않고 폭탄이나 총 등으로 죄없는 사람들과 함께 죽는 행위를 말함. 목사들은 '거룩한 행위'라고 칭송하지만 희한하게 '거룩한' 목사는 거의 없음.

 

면죄부: '동전이 헌금함에 딸랑하고 떨어지면 죄악이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유명한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죄를 돈으로 없애는 중세의 병부. 현대에는 교회 주보에 특별헌금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대체. 지은 죄가 차고도 넘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돈벌이에 몰두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것.

 

봉헌: 자신이 가진것을 신에게 소유권 이전하겠다는 것. 예) 성당봉헌 등. 자유행위로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으나 때로는 자기것이 아닌데도 신에게 소유권을 이전하겠다는 미친 인간들이 있다는 것임. 예) 서울시봉헌, 대한민국봉헌.

 

특별헌금: 보너스

 

전도장려금: 인센티브

 

신고: 게시판에 전지전능한 신을 까는, 원치 않는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운영자에게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버튼을 누르며 졸라대는 행위. 대부분은 효과가 없음.

 

친교: 교회사람들끼리 사적으로 어울림을 말함. 아줌마들끼리는 계모임을 하다가 계주가 다른 곳으로 튀어 울며불며 경찰서 찾아가는 민사사고로 발전하는  경우가 허다함.  SM교회(시망교회?) 같이 염불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이 이 목적으로 교회 다니는 경우도 있음

 

신유: 병든 인간을 신이 치유해주었다는 주장. 보통 '신유의 역사'라고 쓰임. 대부분 치료를 받지 않아도 나았을 경상이거나 중한 병이라도 양질의 약이나 의료진의 헌신적인 의료행위는 전혀 무시한 채 오로지 신이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믿음. 현대의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일정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과장하여 말함(암환자의 생존 등). 역사상 지금까지 한번도 잘린 팔다리나, 없어진 눈알이 다시 생겨난 '신유'를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서 그다지 신빙성이 없음.

 

전도사: 하는 일은 목사와 비슷하나 목사만큼 대접을 못받는 대표적인 계약직 노동자. 목사가 정교수라면 전도사는 시간강사임. 일부 안 그런 사람들도 있으나 목사의 인턴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됨. 비슷한 예 => 강도사

 

성찬: 대낮음주행위. '이것은 내살과 피이니 먹고 마셔라'라는 카니벌리즘이 나이브하게 현대화된 것임. 싸구려 진로포도주와 안주라고는 백설기 떡 한 토막인데 모두들 입에 넣고 황송하다는 듯이 기도를 함.

 

선교봉사: 교인들이 (드물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선교'라는 이름을 걸고 어떤 행동에 나서는 것. 예) 김장선교봉사, 아프리카선교봉사. 일반적인 이타적 봉사행위와 유사하나 동기가 전혀 다름. "저는 이렇게 당신의 뜻을 따릅니다" 라고 하는 신에 대한 아첨과 선명성 과시의 일환인 경우가 많으며, 저소득층이나 거동불가자들에게 봉사를 하고 자신들의 종교로 개종할 것을 채권추심하듯 하는 경우도 많음.

 

?파스칼의 내기: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내기를 걸자면 있는데 걸겠다. 없으면 그뿐이지만, 있는데 나중에 죽어서 천당 못 가면 어쩌나" 이런 논리로 교회만 나오라고 전도하는 친구들이 있음. 자세히 살펴보면 신이 병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음. 신이 맘 속은 다 들여다 보는데 얄팍하게 이런 수를 쓰는 것을 못 본다고 하는 논리.

 

찬양: 신앙에 관련된 노래. 독창, 중창, 합창 등을 가리지 않고 데시벨이 높은 것이 특징.  노래하면서 주먹을 쥐고 자신의 허벅지나 책상들을 연속해서 박자맞춰 가격하는 양상을 띰. 다른 환자들의 절대안정이 필요한 병원에서도, 도서관 앞에서도, 다들 011쓰는지 낮과밤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음. 통성기도와 더불어 소음공해의 대표적인 예.

 

삥땅: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경에서 헌금으로 이걸 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자리에서 피토하며 죽은 것. 동생 아벨을 돌로 찍어 죽이고도 축복을 받은 카인의 예에 비교해 보자면 법의 형평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어.  아울러 신은 다른 것은 다 용서해도 '헌금삥땅'만큼은 절대 용서 못한다는 것을 무시무시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는 예. 여름성경학교때 50원 삥땅쳐서 아이스크림 사먹은 사람들은 나중에 다 지옥행. 교회사역자 중에서 이런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나 다들 쉬쉬하고 있는 상황임.

 

교회오빠: 오빠 못 믿어?

 

증거: 지구상의 어떤 물리자연적 현상이나 인문사회적 주장에도 숱하게 등장해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만 유독 신의 존재에 관련해서는 단 하나의 털끝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것.

 

천사: 야훼의 행동대장. 어떤 대목에서는 칼을 들고 다니면서 한나라의 모든 장자를 다 죽이는 엄청난 존재로 나오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동성연애자들에게 쫓겨다니다가 비역질(항문섹스)을 당할 뻔하는 등 전투력과 방어력을 종잡을 수 없는 존재. 악마의 원형.

 

악마: 천사가 타락해서 되어버렸다는 악의 근원. 단테의 지옥편에서는 '죄와 죽음'과 함께 단란한 일가족을 이루고 있음. 신의 역사를 방해하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타락과 악에 물들게 하는 네거티브의 끝판왕. 그런데 문제는 이 악마도 천지만물을 만든 야훼가 만들었다는 것. 이 변태영감님의 크리에이티브 센스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음.

 

구원: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이 열차 올라타고 하늘나라 간다고 믿는 기독교 최후의 궁극적인 보상. 이보다 더한 보상은 인챈트 9성까지된 존박의 '쳐밀도' 뿐. 기독교인에겐 모든 퀘스트의 동기부여.  자기들 혼자 믿는 것은 좋은데 남까지 '구원' 시키려다보니 이 세상에서 수십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모든 종교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음. 얼마전 이 '구원'을 받은 봉은사 주지 스님 앞에서 이 '구원'을 해준 청년들이 무릎꿇고 회개하고 있는 희한한 장면이 보도 되었음.

 

회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느니라'라는 구절로 유명함. 보통의 의미로는 회개 이후에 극적인 행동변화가 병행되어지나 유독 '일부' 개신교에서는 회개는 회개, 행동은 행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음. 주중에 죄 지으려고 일요일날 회개하러 교회다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함.

 

출애급기: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지어 애급(이집트)에서 수백년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애급에서 탈출한다는 장편대하역사소설. 영화 십계로도 유명함. 희한한 것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인 수퍼내추럴 네비게이션으로 길 안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40년이나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는것. 속도는 거리/시간이므로 지도에 표현된 대로 대충 계산해 보면 1시간당 약 2.7cm(2.7m 든가) 정도 이동했다는 계산. 이것도 잠잔 시간 밥해 먹는시간 다 빼서 이 정도임. 이건 뭐 짚신벌레 한가위 대이동도 아니고(참고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삼보일배를 해도 40년까지는 걸리지 않음).

 

기도: 기독교인들이 신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땅거지마냥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것. 보통 "주여!"가 접두사이며  "~해 주시옵소서"가 접미사임(간혹 옆에서 "아멘"이라고 추임새 넣는 사람이 있음). 기도의 달인들은 30분이 넘게 기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님(욕심쟁이 우후훗~).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뭐 달라진 것도 없는데 울면서 울면서 자신의 기도가 응답 받았다고 함. 그런데 희한한 것은 자세히 들어보면 내가 다른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뭘 해 '주겠다'고 하는 기도는 거의 없음. 자기가 뭘 얻으려면 그만큼에 대한 것을 남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것인데 이건 뭐 그냥 무작정 달라고만 함. 기독교인의 기도가 대부분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신이 다른 것은 몰라도 '등가교환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임.

 

순기능: 기독교인들이 그들중 '일부'의 뻘짓으로 전체가 공격당할 때 "우리도 잘 한거 이쪄여 뿌우~" 하고 반격용으로 곧잘 내미는 비장의 카드. '극히 일부'지만 사회봉사, 빈민구제, 독재에의 항거 등등이 있음. 하지만 강간범이 기부금을 낸다고 해서 강간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부금을 낸 강간범이 된다는 크리스 허친스의 말처럼 무한으로 수렴하는 역기능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의-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단백질의- DNA염기량 같이 극히 미미한 양임.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내밀지 못할 카드.

 

노방전도: 노상방뇨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도로를 더럽히는 행위.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들고 큰소리로 '예수천국불신지옥'을 외치거나 때로는 찬송가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경우도 있음. 일단 잡히면 성가시므로 우회바람. 혹시 잡혔다면 "전 예수 안 믿어요"가 가장 바보같고 불행을 부르는 대응방법이며 "저 교회 다니는데요" 가 두번째 불행한 대응 방법임.  "어느 교회 다녀? 산넘고 물건너 우리 교회 나와"라는 연타를 맞을 확률이 높음. 노상방뇨와 같이 경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법해석이 있음.

 

인신공양: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  멜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스'를 보면 이해가 쉬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다가 실패한 것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어차피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을뿐"이라고 둘러대지만(여기서 아들 이삭이 입었을 심각한 트라우마는 생략하도록 하자) 몇장 뒤에 나오는 '입다'가 신이 전쟁에 이기게 해줬다는 이유로 자신의 '딸'을 섭씨 1500도인 고온에서 불태워 제물로 바친 것에 대해서까지는 모르는 척하는 기독교인이 태반. 남자만 살려두는 신은 성차별론자.

 

도덕: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는 기초적인 능력.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자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받아 들이는 태도". 그러나 '일부'에게는 신의 명령이 있으면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덕목.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것은 싸이에게 식스팩을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하릴 없는 짓이다.

 

할례: 포경수술.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해 전세계로 전파한, 의료적으로도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쓸데없는 행위. 지적설계자인 야훼가 왜 쓸데 없이 우멍거지(귀두포피)를 만들어 냈냐고 물어보면 그 누구도 대답이 궁색한 우주적 넌센스. 보통 여성과 이교도들에게 "할례받지 못한자"라고 하면서 성스럽지 못하다, 천국갈 자격이 없다는 뉘앙스로 자주 쓰인다. '귀두를 까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강제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울 지경. 

 

한기총: 한기범 형 아님.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복마전의 끝판왕. 여러 분파로 갈려진 개신교 분파를 통합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었으나 곧 내부에서 여러 파벌로 나뉘어 총장 새로 뽑을 때마다 생선 썪은 냄새가 나는 한국 기독교의 총본산. 정교분리 원칙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치적발언을 자주 하는 곳임.

 

존중과 배려: 기독교인들이 남이 자신들에게 풍성히 베풀어 주지 않는다고 자기들끼리 어리광 부리는 것. 어리광이라는 것은 동방불패가 양연정에게 부리는 아양과 교태처럼 제 3자에게는 몹시도 역겨우나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 자신들이 믿는 신을 '아버지'라고까지 부르는 존재들이니 유아기적 퇴행이 진행중인가 생각해보면 어리광도 한편 그들스럽다 싶지만, 자신들의 배타적 교리와 땅끝까지 가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겠다는 천민전도주의의 폐해를 단 한번이라도 되새겨 봤다면 차마 낯간지러워서 입에서 못 뱉을 두 단어.

 

우주의 역사: 기독교인에게는 6,000년. 끝. 그런데 풉(죄송합니다. 저는 웃음을 잘 못 참아서) 빛은 초당 30만 km를 달리고, 우리는 이미 우주에서 100억광년 전에 쏘아진 빛까지 관측해 분석하고 있다.  증거가 뚜렷한 과학 이야기는 그들이 극히 싫어하는 주제. 사람이 뭘 싫어하는 데는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말 끝.

 

스티븐호킹: 대표적인 물리학자. 블랙홀 관측과 이론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이며 신체적 불행에도 불구하고 퀀텀에서 유니버스까지 통합된 우주 생성의 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 근육위축가쪽경화증(루 게릭병)을 앓고 있음. 무신론자.  '일부' 기독교인들은 호킹이 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신의 심판을 받아 루게릭병에 걸렸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루 게릭병의 원조인 MLB의 루 게릭이 독실한 기독교도였다는 사실은 다들 쉬쉬하고 있는 중.

 

진화론: 다윈이 최초로 주장하고 여러 학자를 거쳐 최근 굴드와 도킨스까지 이른, 지구상에서 수백만 종의 다양한 생물들이 번성하고 있는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이론. 진화의 핵심이 '개체의 품질개량'인지 '다양성의 증가'인지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나 과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고 전세계 모든 학교의 과학 교과서에 채택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침팬지가 어떻게 사람이 되나"라고 과학시간에 졸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있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죽었다 살아나냐.

 

지적설계론: 모든 생물을 신이 지적으로 설계했다는 이론. 멍청이 할배가 자기를 본 따 설계한 듯 보이는 '일부' 지적생명체의 찌질한 행태를 지켜 보자면 가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나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지적설계론을 정식적으로 교과서에 채택하고 있는 공립학교는 이 세상에 단 한 군데도 없다. 2010년 1월 캘리포니아 법원은 '지적설계론 교육을 받은 학생은 캘리포니아 소재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조지 부시를 비롯한 성서근본주의자들이 로비와 압력으로 공립학교 교과서에 지적설계론을 기재하고 병행수업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판사들은 '일부'들 생각보다 매우 똑똑하다.

 

여자: 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족-사람속에 속하는 동물중 XX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 대부분의 신체구조와 능력에서 남자와 동일하거나 평등하며 덧붙여 출산을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 사회적 능력 또한 남자와 동일하므로 특정 커뮤니티를 제외하고서는 남자에 비해 과보호해줄 하등의 이유가 없음.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모든 사실을 다 무시하고 단순히 '남편'에게 속한 것으로 보며(남편속-아내종) 남편에게 절대 순종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남자: 수컷. 소녀시대에 환장함. 성경에서는 아내를 소유하고 다스리라고 되어 있으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그런 용기를 낼 수는 없다. oh scary...

 

취사선택: 기독교인들이 성경에서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믿거나 설명하는 찌질한 행위.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재현이 불가능한 상황은 일단 모두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자기들이 생각해도 도저히 말이 안되거나 "지금 당장 재현해봐"라고 할 수있는 대목은 상징, 비유, 우화 등으로 에둘러 소개하는 것을 말함.  예) "태양이 기브온 위에서 머무르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서 머문", 지구의 자전이 멈춘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전대미문의 우주적 대사건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증명할 길이 없으므로)과는 반대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저 산을 옮길 수 있다"라고 해놓고 아무도 산을 못 옮기는 이유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고 단지 비유이기 때문(아니면 그들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 조차도 없거나). 

 

교회동생: 오빠 못 믿어.

 

근친상간: 직계존속들끼리 성행위를 하는 행동. 보통은 윤리적으로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으나 성경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음. 소돔과 고모라 파괴시 그나마 가장 '사람답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롯(초절륜 정력남 아브라함의 조카)이 술을 마시고 딸 2명과 나란히 성관계를 맺고 그중 하나를 임신시킨 , 지금으로 치자면 위치추적발신기를 발목에 차야할 케이스를 제딴에는 잘하는 짓이라고 열심히 기록해 놨음.  이 성경이라는 소설은 판타지와 에로를 너무 왔다갔다 해서 아무리 정신차리고 읽어도 잘 적응이 안 됨.

 

포주: 일명 펨푸. 남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을 일컫는 말. 지역에 따라 히빠리(일어)나 쇼리(주한미군어)라는 속어로 불리기도 한다. 포주의 시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아들을 소시지로 만드려고 했던 인간이니 뭔 짓을 해도 놀랍지가 않지만).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그랄(나는 지금 WOW를 하는것이 아니다)의 왕 아비멜렉의 성노리개로 부려먹으며 혼자 살아 남으려고 한 것을 보면  '일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왜 조상님, 조상님 하는지 이해가 간다.

 

중보기도: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흔치않은' 기도형태(워낙 희귀하다보니 중보기도하자고 그러면 기독교인들도 "그게 뭐야"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병문안 갔을 때 입원실에 어륀지 쥬스도 안 사가지고 맨손으로 달랑 오는게 좀 거시기 해서 말로 떼우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함. 중보기도 이후에는 필히 고성방가가 이어지므로 안정을 요하는 환자는 목숨을 걸고 거부하는 것이 좋음.

 

기드온: 야훼에게 똥개훈련을 시킨 유일한 지구인. 용사 of 용사. 담력의 대마왕이자 신에게 양탄자 적시기 퀘스트를 부여한 극강의 레벨 디자이너.

 

위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순기능 중 하나로 푸시하고 있는 덕목. 신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것. 백번 양보해서 신이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세로토닌이 과다분비되어 우울증환자가 하루 아침에 조증환자가 될 정도로 위로가 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신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본드 흡입자가 공기 흡입자(정상인을 뜻함)에 비해서 위로를 더 받는다는 논리와 마찬가지.

 

시련: 기독교인들이 시절이 하수상하고 상황이 안 좋을 때 쓰는 단어. 가족의 사망, 경제적 고통 등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에 자신들에게 셀프 치어업을 하고 희망을 가지기 위해 쓰는 좋은 단어임은 확실함. 예) "하나님께서는 견디지 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 이런! 이렇게 좋은 말을. 할렐루야 같으니. 심판 편 참조.

심판: 비기독교인들의 시절이 하수상하고 상황이 안 좋을 때 기독교인들이 쓰는 단어. 가족의 사망, 경제적 고통 등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비기독교인의 마음을 아프게 할 심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비아냥거리거나 전도를 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임은 확실함. 예) "예수 안 믿으니까 니가 그꼬라지가 됐지" .  시련 편 참조

 

기도2: 예전에는 종교가 세태를 위해 하던 것 이었으나 요즘에는 세태가 종교를 위해 하는 것.

 

사랑: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짱.  S.E.S에서 유진과 같은 존재(응?). 구약이 야훼의 율법에 관한 내용이라면 신약은 예수의 사랑에 관한 내용.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은 유리같은 것(응?) 등 사랑에 관해서는 성경에도 주옥같은 말이 많으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로 시작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은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솔직히 기독교인들중에 '사랑'이라는 말의 뜻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며 아는 중에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극극히 더 '일부'임. 오늘도 일부가 아닌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고 노희경의 말을 빌자면 "지금 사랑하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모두 유죄"이며 그것도 죄다 종신형급.

2010년 6월 1일 화요일

이준구 교수 "내 양심 몽땅 걸고 4대강 사업 반대한다"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1. 머리말

 

발행부수 많은 일간지만 읽고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아니면 암묵적 담합이 있었는지 몰라도, 웬일인지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굳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타임즈는 "보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보도한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뉴스만을 보도한다(Only the News That I Want to Print)"라는 모토를 채택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눈을 돌려 좀 더 균형 있는 보도에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4대강사업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정치적인 지식인, 종교인만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말 없는 다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제의해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그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한 진실을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에 세뇌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날이 선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 한다. 반대하는 소수의 지식인, 종교인을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텐데 구태여 그들에게 날을 세우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아마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 해도 언제든 밝혀지게 마련이다. 보수 언론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왜곡 보도를 한다 해도 그림 전체를 짜맞추면 진실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공격에 관한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반대하는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이 그것을 보도한 의도는 4대강사업을 띄워 주려는 데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과 관련된 진실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된다.

 

보수 언론이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진실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숱한 문제들로 운동 집단이 형성되고 해체되었지만, 지금까지 4대강사업 반대 그룹처럼 규모가 큰 집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목 타게 갈구하고 있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4대 종교집단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몇 천 명이나 되는 대학교수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경우도 전혀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취미 삼아 한 번 모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국토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뭉쳐진 집단이다. 따라서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게끔 되어 있다. 이들에게 4대강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반대 의사를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들이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홍보 부족으로 인해 실정을 잘 모르고 반대한다는 말로 받아치고 있다.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듣지는 않고 내 말 더 들어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4대강사업 반대 그룹의 일원으로서, 나는 실정을 몰라서 반대하고 있다는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이 사업에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며, 내가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부지런히 4대강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왔으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지식을 축적했다.

 

내가 신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4대강사업은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에서 전혀 쓸모없을 뿐 아니라 매우 큰 위험성을 수반하는 사업이다. 나는 그들이 엄밀한 과학적 근거 위에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정부가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내세운 것들을 보면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엉터리 논리뿐이다. 게다가 내가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사업이다.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말은 한층 더 모욕적으로 들린다. 그 동안 나에게 배운 수많은 제자들이 증언해 주겠지만, 나는 일생을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인해 훌륭한 업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학자로서의 한 길을 걸어온 데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앞으로도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을 의사가 추호도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나에게 정치적 목적 운운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들린다. 다른 교수, 신부, 목사, 스님, 교무들 어느 분에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기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양심을 몽땅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이런 저런 각도에서 왜 4대강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많을 글을 써 왔다. 실정을 몰라서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 내가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 보려고 한다.

 

2.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다

 

한반도대운하사업 얘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 사업의 시대착오적 성격이었다. 아니, 비행기로 화물을 나르는 세상인데 강 위에 느림보 화물선을 띄워 물류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 마디로 한반도를 길게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외토픽에나 나올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대선 때 내건 공약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국민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취임 반년도 안 되어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의 필연이었다.

 

한반도대운하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지 몇 달 후 뜬금없이 등장한 4대강사업은 온통 초록색 분칠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녹색뉴딜'이라는 가당치 않은 구호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시대를 앞서가는 성격의 계획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대운하사업을 4대강사업으로 '이름 세탁'을 했다고 해서 공사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름과 명분이 바뀌었어도 시대착오적이며 반생태적인 사업의 본질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다. 토목공사의 기본 내용이 한반도대운하의 경우와 똑같이 대대적인 준설과 여러 개의 댐(보) 쌓기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물을 잘 흐르게 만든다고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물을 가둬 둔다는 목적으로 높은 댐 쌓는 것은 치수의 낡은 패러다임이다. 홍수 방지라는 명목으로 높은 시멘트 제방을 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미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강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 역시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선진국에서는 강 주변에 만들어 놓은 인공구조물을 철거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

 

4대강사업이 갖는 시대착오성은 외국 전문가에 의해서도 정확하게 지적된 바 있다.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지는 2010년 3월 26일 "Restoration or Devastation"이란 제목하에서 4대강사업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지형학의 권위자인 UC버클리대학의 컨돌프(G. Mathias Kondolf)교수는 이 사업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 문단을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어떤 학자들은 그 계획[4대강사업]이 하천 관리에 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4대강사업은 선진국에서 하천 관리방식이 진화되어 온 길에서 벗어나 있다'라고 UC 버클리대학의 지형학자 컨돌프 교수는 말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개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이제는 강들에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말한다. 이 접근방식이 생태적으로 더욱 건전할 뿐 아니라, 준설이나 제방축조로 인한 하천 관리작업을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사업 담당자 홍씨는 이에 대해 한국의 강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하고 사례 분석을 한 결과에 따르면 댐과 준설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대꾸했다.

 

More fundamentally, some academics believe the plan reflected outdated thinking about watershed management. "The Four Rivers Project is out of step with the way river management is evolving in the developed world."

says G. Mathias Kondolf, a geomorphologist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He says planners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now aim to give rivers room to meander and flood. This approach is more ecologically sound, Kondolf says, and eliminates river maintenance imposed by dredging and embankments. Project official Hong counters that based on their research and case studies of rivers in South Korea, dams and dredging is the best solution."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 할 테지만, 외국의 전문가가 말했으니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댐 축조와 준설이 현재 선진국에서 하천을 관리하는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방식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입만 열면 선진국을 본받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왜 강에 대해서만은 선진국이 가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편할 때만 선진국의 예를 인용하는 그들의 버릇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입맛이 영 씁쓸하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온 홍씨라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모르지만, 대답치고는 무척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몇 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강에 대해 무슨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사례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별 근거 없이 궁색함으로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 너무나 뻔하다. 최선의 대안이란 것은 몇 년의 기간에 걸쳐 수많은 모형실험을 거치고도 찾아내기 힘든 법이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4대강사업의 찬성논리가 대체로 이 정도로 엉성하고 뜬금없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강물이 자유롭게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르도록 놓아두는 하천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이 엄청난 수질 정화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도 강물이 그런대로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것을 모두 준설해 강을 깨끗하게 만든다지만, 사실은 이 자연 정수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 자정기능을 말살시켜 버리고 수질 개선한답시고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부으려는 모습이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만든다.

 

또한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 볼 때도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에 섣불리 손대는 것은 위험한 장난이다. 그 동안 수많은 홍수를 겪으면서 자연은 나름대로의 방어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적절한 장소 몇 곳을 둑으로 보완하기만 하면 자연 그대로의 강은 훌륭한 홍수방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대부분의 홍수 피해가 4대강사업의 공사 대상이 아닌 상류나 지류에서 일어났으며, 그나마 산림 파괴나 난개발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무모한 4대강의 직강화가 어떤 초대형 인재를 초래하게  될지는 역사가 증언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한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에 불과하다. 자연 그대로의 강을 살려 둔 채 부분적인 손질을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댐 축조와 준설이라는 낡은 교리를 적용해 우리의 강들을 몽땅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3. 생태계 교란은 위험한 불장난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이 공사의 본질이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강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갖고 오랜 기간 동안 진화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강변의 하찮게 보이는 풀숲, 모래톱, 웅덩이라 할지라도 수억 년을 끊임없이 흐른 물길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이 수많은 홍수와 가뭄을 거쳐 갖게 된 오늘날의 모습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오직 심미적인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자연에 섣불리 손대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하고 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래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된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이롭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이득의 관점에서 볼 때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수질 정화나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도 (약간의 보완을 가한) 자연 그대로의 강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4대강사업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국토 전체의 생태계가 몽땅 뒤집혀질 정도로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 자신도 현재의 상태에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진실은 감히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믿는다. 청계천과 양재천의 작은 성공에 들떠있는 정부는 생태계 교란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썩어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과 아무 문제가 없던 4대강을 뒤집어엎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생태계에 대한 무지 때문에 4대강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불장난인지 모를 뿐이다.

 

최근 섬진강에서만 사는 갈겨니가 난데없이 청계천에서 발견되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청계천 관리당국이 풀어 넣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된 바 없지만, 하여튼 청계천의 생태환경이 엉망으로 망가졌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크게 늘었다는 선전도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온 국토의 강들을 청계천의 꼴로 만들어 놓으려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청계천의 예를 보면 4대강사업이 모두 끝난 후 강 주변의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지리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물고기 잡아와 4대강 아무 곳에나 풀어 놓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한강에만 사는 물고기가 영산강에서 발견되는 일 같은 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는 강물이 깨끗해져서 서식 어종이 더욱 풍부해졌다고 거짓 홍보를 해댈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 큰 강들이 고유의 생태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초대형 어항이나 수족관으로 변화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생물학 교과서를 바꿔 써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는 무신경의 소유자들이 지금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생태계의 교란은 그 귀결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국의 4대강을 온통 뒤집어엎은 후 우리 국토 전반에 걸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하지 못한다.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하수 수위가 어떻게 변화할지, 혹은 어떤 동식물의 종이 사라지고 어떤 종이 새로 나타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새만금사업의 여파로 인근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 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전은 물론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과정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전 국토에 걸쳐 이런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 속속 나타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게 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4대강사업으로 전 국토의 생태계가 엉망으로 망가지면 원상회복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울 테니 걱정이 더욱 크다.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과 풀이 다시 무성해지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강바닥의 모래를 몽땅 긁어내는 바람에 산란장을 잃은 물고기들이 다시 떼지어 다닐 만큼 그 수가 늘어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뭉개진 모래톱과 습지는 영영 되살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목전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이런 위험한 일을 저지른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4대강사업의 반(反)생태성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수만, 수억 년을 평화스럽게 살아오던 뭇 생명들을 죽음의 구렁이로 내몰고 있다. 요즈음 인터넷상에서 나도는 사진들을 보면 4대강사업이 우리 국토를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생명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생명의 권리를 갖고 이 땅에서 터 잡고 살아가는데, 도대체 우리가 그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갈 그 어떤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 양심은 이 거대한 '죽음의 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4. 정당한 절차가 무시된 반민주적 사업이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지금 4대강사업과 관련해 우리 민주주의는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이 사업이 그대로 강행되느냐 아니면 중단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적 원칙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그대로 지켜질 수도 있다.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신념 하나만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은 명백한 반민주성을 갖고 있다.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어렵게 얻은 이 땅의 민주주의는 또 다시 시궁창에 내던져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4대강사업은 불과 몇 달 동안의 밀실작업의 결과로 급조된 토목공사다. 무리하게 추진되다 좌절된 한반도대운하사업과 달리, 4대강사업은 대선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공론과정도 거치지 않고 집권여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킴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일을 해치워 버렸기 때문에, 그 사업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삽질이 시작되고 전국의 강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정부는 모든 절차를 지켜 공사에 착수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형식상의 절차를 지켰을지 몰라도, 상식의 선에서 보면 결코 정당한 절차가 지켜졌다고 말할 수 없다. 예컨대 불과 몇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에 그와 같은 초대형 토목공사의 환경영향 평가를 끝마쳤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단순한 토목사업도 몇 달 안에 끝내기 힘든 마당에, 전국에 걸친 생태계에 거의 지각변동에 가까운 영향을 줄 사업의 평가를 몇 달만에 끝마쳤다면 보나마나 부실평가였음에 틀림없다.

 

22조원이나 드는 초대형 토목사업인데 거의 모든 비용지출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에 따라 보 설치, 하천 준설 등의 사업은 재해 예방사업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인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편의주의적 행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법 규정만 지켰다고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다 할 여론 수렴의 과정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만으로 사업계획을 짜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4대강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제대로 된 토론회 하나 열려 본 적이 없다. 모든 보수언론은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 그 자체에 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국민을 이렇게 무지의 상태에 몰아넣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견제를 함으로써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건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은 거수기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거대여당이 국회를 장악함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사법부가 간간히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비틀거리기 일쑤다. 그나마 사법부의 견제도 아주 사소한 사안에 관해서만 행해지고 있을 뿐, 국가운영의 기본틀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견제와 균형은 행정부 안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부처의 성격에 따라 이와 같은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리적인 정책 수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의 주무부서가 국토해양부라 해서 다른 부서들이 일체 관심을 끊고 방관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이 사업에서 나오는 파장이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바로 자기 부서의 관심분야라 한다면 제3의 부서라도 당연히 그 사업에 간여해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부의 입장에서 볼 때 4대강사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에 대한 경보를 발령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환경부의 존재이유라는 사실에 한 점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4대강사업과 관련해 환경부는 그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거수기로 전락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말았다. 환경에 대한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대비책을 촉구해야 할 환경부가 오히려 만세를 불러주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본다 해도 이런 사례는 찾기 힘들 텐데, 내가 내는 아까운 세금이 왜 이런 부서의 유지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나아가 민주주의적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제4부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간지 3개사와 지상파 3개 방송국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내가 이들에게 4대강사업의 반대투쟁에 앞서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그런 정도로 터무니없는 기대를 할 리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객관적인 사실만이라도 정확하게 보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사건조차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여론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가톨릭 교단이 주교회의라는 공식기구의 결의를 통해 사회적 현안문제에 대해 목소리 낸 것을 본 적이 없다. 5천 여 명이나 되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서명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힌 것을 본 적도 없다. 아마 조선시대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처음 보는 중대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2천 명이 넘는 선방의 수도승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처음 보는 일이다. 산사에서 오직 수행에 정진하고 있어야 할 수도승이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인데, 그 숫자가 2천여 명이나 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이 중요한 사건들을 거의 모두 무시해 버렸다.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설사 기사를 싣는다 해도 시시한 상해사건보다도 더 작은 비중으로 다루기 일쑤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은 누가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렇게 언론까지 적극적인 협조자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견제할 방법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이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거의 모두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의 강행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 하는 정부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는 이 비민주적인 4대강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5. 아무런 준비도 없는 졸속사업이다

 

4대강사업에 대한 정부의 홍보를 보면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불과 몇 달만의 밀실작업에서 태동한 사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이 사업을 해야 하는 당위성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수질 정화, 홍수 예방, 용수 확보 세 가지다. 그런데 왜 그런 목적의 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수치는 하나도 없고 그저 막연한 수사(rhetoric)로 채워져 있을뿐이다. 물고기와 새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빨리 강을 살려야 한다,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담을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허황한 수사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수질 정화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시키려면 현재 4대강의 수질오염이 어느 정도이며,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4대강의 각 지점에서 정확한 오염도를 측정하고, 주요 오염원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런 정확한 데이터에 기초해 여러 가지 대책의 효율성을 비교, 평가하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이런 포괄적인 분석작업의 결과 4대강사업 같은 대규모 준설 이외의 적절한 대안은 없다는 결론이 나와야 비로소 이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신뢰하는 우리 대학의 환경공학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처럼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헤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한다. 강 밑바닥의 흙이 오염되어 있는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지극히 일부에 국한된 일이며 전역에 걸친 대규모 준설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면 4대강의 전 지점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아무런 객관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좋은 증거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영산강과 낙동강의 물이 썩었다." 혹은 "겨울 갈수기가 되면 오염도가 특히 높아진다." 정도의 막연한 말을 늘어놓는 일뿐이다.

 

또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강물을 가둬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도 무척 희박하다. 정부는 물 부족 사태가 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언제 어느 정도의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물 부족의 가능성을 점치는 유일한 근거는 외국의 한 사설 연구단체가 내놓은 신빙성 없는 보고서인 것 같다. 강수량을 인구로 나눠 얻은 이 조잡한 분석 결과는 많은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런 어설픈 분석 결과에 기초해 불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앞으로 물에 대한 수요가 대폭 증가하거나 공급이 대폭 줄어든다고 예상할 하등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에 대한 수요는 우리의 생활방식 그리고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 생활방식이 어떤 이유로 갑자기 물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바뀐다면 물 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웬만한 집에서 모두 뒷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고, 매일 물을 갈아 넣는 일이 생긴다면 물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장래에 정말로 그런 일들이 발생할까? 구태여 대답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다.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도 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야 할 이유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서비스업에 비해 농업과 제조업이 물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만약 서비스업의 비중이 더 작아지고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더 커진다면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는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제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짐에 따라 물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으나, 이 수요 증가폭이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수요 감소폭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용으로 소비되는 물의 측면에서도 물 부족 현상을 야기할 이렇다 할 요인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의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부근의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장기 전망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전망이 나와 있다면, 용수 확보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약간의 정당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그런 전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에게 가르쳐 주기 바란다.

 

나아가 홍수 예방을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구체적 근거가 제시된 것을 본 적도 없다. 홍수 예방을 위해 그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우선 그동안 일어난 홍수와 관련된 통계를 제시하고 4대강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의 홍수 관련 통계를 보면 지금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간에서 일어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 진정으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면 상류와 지류에 토목공사가 집중되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걸고 있는 홍수예방이란 목표가 아무 의미도 없는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인해 몇 달의 짧은 기간에 급조된 초대형 토목공사다. 4개의 강에 대해 판박이와도 같이 똑같은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준비가 부실한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만약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의 대책을 세운 것이라면, 토목공사의 내용이 강마다 달라져야 할 뿐 아니라 똑같은 강이라도 지점마다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산강은 수질 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인 한편, 금강의 경우에는 홍수 예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영산강과 금강에서 이루어지는 토목공사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영산강이라도 이곳에서는 습지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은 막는 데 주력한다는 식으로 지점마다 공사의 주안점이 달라져야 마땅한 일이다.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4대강에 대해 한결같이 깊숙하게 준설하고 높은 댐을 쌓는 방식으로 이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무런 심사숙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4대강의 모든 지점에서 판박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댐을 쌓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토목공사의 과정에서 혹은 모두 끝나고 난 다음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더군다나 4대강사업처럼 사상 유례없는 대형 토목공사의 경우에는 돌발 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특별히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4대강사업본부가 과연 이런 대응책을 준비해 놓고 삽을 뜨기 시작했을까? 나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그런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온 국민이 그것의 피해를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 정부는 지금 준비 안 된 졸속공사로 국민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6.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은 조잡하지만 그나마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내놓아서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4대강사업은 아예 비용-편익분석의 결과를 제시하지도 않고 있어 경제적 타당성의 평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기초적인 비용-편익분석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를 믿느냐? 그러면 따라 오라"는 식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과 관련된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의도적 선택임이 분명하지만, 나로서는 그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반도대운하가 논의되고 있을 때 편익이 비용의 두 배 이상이라는 분석 결과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아예 그런 비판의 소지를 없애자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다. 그것보다 더욱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가능성은 몇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비용-편익분석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구체적인 비용-편익분석의 결과 없이 제시된 4대강사업은 그 타당성 입증책임의 소재를 뒤바꿔놓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었다. 어떤 공공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히 그것의 시행 주체인 정부에 있다. 그런데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 관련 논의를 보면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왜 그 사업이 타당성이 없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4대강을 정비하려 한다는데 무슨 근거에서 훼방을 놓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그런 적반하장식의 우스꽝스러운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논의가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상식을 뒤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방지에서 오는 편익이 22조원+알파를 초과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해야만 4대강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서 ?는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한 비용을 뜻하며, 이는 엄청나게 큰 값이 될 수 있다.) 그 토목공사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편익이 창출될 수 있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말이 쉽지 22조원이라면 이만저만 큰돈이 아니다. 최근 남유럽에서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결코 안심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로부터 건전한 재정을 물려받았기 망정이지, 부실한 재정을 물려받았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사업에 22조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재정의 건전성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다음 정부에게 부실한 재정을 물려주는 최초의 정부가 되기 않기를 바란다.

 

이 22조원이란 불요불급한 지출의 부담이 누구에게로 돌아갈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더군다나 부자 감세를 통해 중,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높여 놓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연간 1조 남짓의 추가적 조세부담을 놓고 포퓰리즘이니 아니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 22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쓸모없이 쏟아 붓는 것과 관련한 조세부담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그런 쓸모없는 조세부담을 단 한 푼이라도 떠안기 싫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22조원의 비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일단 공사가 완료된 후라 할지라도 매년 유지, 보수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다. 청계천처럼 작은 물길 하나를 유지, 보수하는 데 매년 백억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전국의 강들에 매년 퍼부어야 할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질 정화한 가지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난 규모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흘러들어가는 물은 여전히 더러운데 물을 담는 그릇이 커진다고 물이 더 깨끗해질 리 없다. 오히려 물의 흐름이 늦어져 더 더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4대강사업으로 물이 맑아진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수를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많은 양의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22조원에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된 비용을 더하고, 여기에 다시 매년 들어가는 유지, 보수비용까지 포함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밀하게 계산해 보면 그 사업에서 나오는 편익이 그 1/10에도 못 미칠지 가능성이 크다.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여러 정황에 미루어 판단해 볼 때 4대강사업은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라고 말이다.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이 결론을 조금이라도 수정할 용의가 없다.

 

최근에는 4대강사업의 공정이 이미 30% 이상 진전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이비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제학의 기초만 갖고 있어도 이 논리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토목공사에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은 무슨 수를 쓰든 회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sunk cost)의 성격을 갖는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매몰비용은 얼마가 되었든 잊어버려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미련 없이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4대강사업의 계속 여부를 고려할 때 이제까지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미래의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즉 공사를 계속해 우리의 국토를 더 망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미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더 이상의 파괴를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응당 잊어버려야 하는 매몰비용에 연연해 추가적인 파괴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이미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니 공사를 계속하자는 사이비 논리는 비단 이번뿐 아니라 늘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토건족은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일단 저질러 놓고는 이 사이비 논리를 동원해 공사를 계속할 빌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버릇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4대강사업과 관련해 그와 같은 사이비 논리가 발을 붙일 틈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7. 맺음말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모든 양심을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나는 그 사업이 수행할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수행해서는 안 될 것임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4대강을 정비해야 할 당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강들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홍수와 물 부족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대규모 토목공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정부만 알고 있을 뿐 우리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다.

 

4대강사업이 단지 아까운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빚는 데 그친다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의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이 가져올 파장이다. 현재 고작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났을 때 4대강 연변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다. 그때가 되면 수천, 수만 년을 우리 곁에서 정겹게 굽이치며 흐르던 강은 우리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 대신 인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들이 우리를 맞게 될 것이다.

 

전국의 강들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는 전국의 강을 성형수술대에 올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할지 몰라도 속으로 골병이 든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이 강에서 살던 물고기를 저 강으로 옮기고, 이 강변에서 자라던 풀과 나무를 저 강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 국토의 생태계는 엉망으로 망가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의 무모한 간섭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빚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크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순수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국민의 걱정 소리에 귀를 닫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과 정부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강한 목소리로 '4대강사업 절대불가'를 외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 안에 끝내겠다는 고집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국민이 어떤 말을 하던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독선과 오만이 두렵기만 하다.

 

지금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양상은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 언론이 이 진실을 잠시 은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눈과 귀를 언제까지나 가려둔 상태로 묶어놓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위기상황의 진전 과정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정부와 반대진영 사이에서 힘의 대결이 빚어질 수 있고, 어쩌면 2008년의 촛불시위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정부에게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발표하는 성명서를 정독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사업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결의가 얼마나 굳건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회유와 위협에 넘어갈 사람인지의 여부도 미리 파악하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4대강 사업 결사반대의 의지를 이미 굳혀놓은 상태이며, 어떤 회유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만약 이 사실을 잘 안다면 반대여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 180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약이라도 올리듯 속도전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반대진영의 결의를 더욱 굳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정적인 반전이 없는 한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의 삽질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지식인과 종교인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다. 파국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4대강사업의 삽질을 잠시 멈추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4대강사업은 계속할 테지만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거짓 대화 제의는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다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계속 반대할 의사를 갖고 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뽑혔다 해서,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해서 모든 일을 자기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건네받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성숙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부해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인해 민주주의적 원칙은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앞날이 결정될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4대강사업을 그대로 밀어 붙인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 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SKT 기변 혜택 확대

http://it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488971&g_menu=020300

 

→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미 올 초부터 '행복기변'이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기존 고객에 (보조금 차등 따위의) 차별을 두지 않고 혜택을 동일하게 배분해 왔다"면서 "하지만 오는 5월부터는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수당)를 전면 인상해 기존 고객에 대한 혜택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위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SKT 의 기변이 앞으로 용이해질 전망이다. 기존에 기변을 하는 경우에는 신규가입이나 번호이동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었지만, 어느정도까지일지는 몰라도 이제 기변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위 SKT관계자는 행복기변 프로그램이 기변자들에게 혜택을 동일하게 배분한 것이라고 하지만, 행복기변시 SKT 멤버십의 각종 혜택이 사용이 막히는 등 내 개인적 입장에서는 별 쓸모없는 기변제도였다.)

 

이 행위는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동전화시장이 포화상태라서 신규진입자에 신경쓰기보다는 기존 가입자 수성에 더 신경써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또 하나는 스마트폰 시장의 활성화이다. 값비싼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 번호를 여기저기 이동해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KTF의 아이폰에 대응하기 위해 SKT가 모토롤라, 삼성 등의 스마트폰을 다수 출시하는 상황에서, 기존 고객이 아이폰으로 넘어가지 않고 SKT의 스마트폰으로 넘어오게 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내 입장에선 정말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6월 출시되는 모토롤라의 XT800 스마트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만간 번호(011)변경 없이 스마트폰으로 기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 애플에서도 CDMA방식의 아이폰이 나온다는 루머가 있지만, 한국에 출시될지 여부는 불투명하기 때문에..(KTF는 2G 보단 3G 를 선호하는 입장이라 CDMA방식의 아이폰이 나와도 한국에 출시할런지는 모르겠다.)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떡검 작렬

그냥 그런줄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던 사실을
눈과 귀로 확인하고 나니 뭐랄까, 괜히 더 불쾌하고 찝찝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떡검의 떡이 참 다양한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재밌다.


그나저나 이런놈들이 죄를 심판하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요새는 칼날을 겨누는 것을 넘어서 애꿎은 사람을 칼등으로 난도질까지 하드만..


더러운 것을 상대하는 집단도 깨끗해지지 못하라는 법은 없을텐데...언제쯤?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C309A 찌그러짐, 잘림 없이 인쇄하기

C309A 의 기본 설정으로 인쇄하는 경우

 

문서가 찌그러지거나, 양면인쇄시 한쪽 모서리가 잘리는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그래서 여러가지지 옵션을 사용해서 test 하여

 

화면에 나온 문서 모습 그대로 나오도록 하는 옵션을 겨우 발견했다.

 

 

용지 크기에 맞춤 을 선택하고, 여백최소화에 체크를 하면 된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SoftCamp Secure KeyStroke 로 인한 문제 발생시..

http://210.181.193.3/scsk/

 

위 주소로 들어가서

 

키보드보안 진단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이것도 Active X 로 실행된다..젠장)

 

차근차근 진단을 해보자.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나도 농협은 아예 로그인이 안되고 하나은행은 들어간 후에 에러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방법을 쓰고 나니 해결이 되었다.

 

 

 

언제쯤 Active X 를 안쓰게 될 것인지..